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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amazon.com/dp/B0041JH5OA) |
BBC One 채널에서 2008년부터 방영하기 시작하여 2016년까지 총 4시즌 12편의 에피소드로 막을 내린 월랜더(Wallander, 이하 월랜더로만 표기)는 스웨덴의 저명한 작가 헤닝 만켈(Henning Mankell, 1948~2015)의 쿠르트 발란더(Kurt Wallander)라는 소설을 드라마화 한 것이다. 자국 소설이다보니 월랜더라는 드라마는 이미 2005년에 스웨덴에서 자국 배우들로 구성되어 제작되었다. BBC에서 제작된 이 월랜더는 같은 소설을 배경으로 하지만 스웨덴 월랜더와는 다른 배우, 다른 감독, 다른 감성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BBC의 월랜더가 소설의 컨셉을 수정한 것은 아니다. 쿠르트 발란더는 스웨덴의 경찰 쿠르트 발란더(Kurt Wallander)가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있는데, BBC의 월랜더는 쿠르트 발란더라는 Kurt Wallander의 스웨덴식 발음 대신 커트 월랜더라는 영국식 발음을 하는 등의 영국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설정인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 이외에는 소설의 설정을 바꾸지 않았다. 드라마의 배경장소는 스웨덴이고 커트 월랜더는 여전히 스웨덴 경찰이며 사건은 스웨덴인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드라마의 배경이 스웨덴이라는 설정 덕분에 드라마는 몇몇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전 시즌 내내 스웨덴에서 촬영되었다. 스웨덴은 노르웨이의 동쪽에 위치하는 북유럽 국가로서 꽤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온 곳이 도시화되어있기보다는 도시와 전원이 뒤섞여있고 전원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녹색의 전원은 필시 여행지로서는 매우 아름다울테지만 월랜더에서는 주인공 월랜더의 쓸쓸함, 외로움, 허전함을 부각시키는 요소가 된다. 바로 이 점이 월랜더가 수많은 수사물 중에서 스스로를 구별시키는 부분이다(라기 보단 내 마음을 쳤던 부분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수사물들은 수없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여러 특별한 설정이 있었다.마법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과학수사기술부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이리저리 덫을 놓는 심리술, 특정 사건만을 전담으로하는 수사대, 종국에는 죽은 자와의 대화를 통해 범인을 잡는 설정까지 말이다. 무엇하나 내게 작위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월랜더는 다른 수사물처럼 수사 과정이 메인 스토리이지만, 동시에 월랜더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또 다른 주된 줄거리를 구성한다. 월랜더는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그렇기에 외로워하고 쓸쓸해하며 가족과 가까워지고싶어도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에 허전해하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이런 월랜더라는 인물을 쓸쓸함을 온 드라마를 통틀어서 꾸준히 보여주고, 그 쓸쓸함의 깊이를 월랜더라는 인물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침착하게 담아낸다. 감독은 한땀한땀 장인정신으로 월랜더라는 인물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오직 인물이 뱉어내는 대사나 행동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무채색으로 일관하는 필름의 채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카메라 구도, 차분하면서도 쓸쓸한 단조의 배경음악 등 모든 요소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수사 과정 다른 수사물들처럼 현란하지 않다. 실제 형사들의 수사가 진행되듯 천천히 차분히 차근차근히 착실히 단계를 밟아가며 진행된다. 갑자기 반전이 일어난다던가, 결정적 힌트를 발견한다던가 하는 식이 아니다. 한 인간을 그렇게 깊히 파고드는 것만큼 수사과정도 장난처럼 마법같지 않다. 그런 작위성의 부재는 사실성과 개연성을 부과하고 드라마에 신뢰감을 준다. 혹자에게는 지루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 꼼꼼함이 사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